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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982년 4월 의령학살 사건의 전말2019-07-14 11: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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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남산 안기부 회고록(개정증보9판).hwp (142.5KB)

19824월 경남 의령군 궁류면 마을주민 학살(우순경사건)의 전말

 

 

전두환(전 대통령)아버지 전상철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7년 동안 경남 의령군 궁류면 일본순사였다.

전두환 가족은 1931~1932년 의령군 궁류면 원당리(현 평촌리)에 살았다. 전상철이 뇌물 수수로 파직 당했다.

전두환 아버지 전상철( 전두환은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순사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할아버지 이름 전상우로 아버지 이름을 바꾸었다. 족보에는 전상철로 기록되어있다.)에 대한 기록은 조선총독부 경시청 기록문서로 일본에 보관되어 있다.

1981년 전두환의 아버지가 일본순사였다는 것을 주지한 박정희는 아웅산묘지폭발(김주혁 친아버지인 중앙정보부 특수장치보급 계장 김상국(본명: 김상훈)이 폭파장치를 설치하였다.)공작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1980년부터 의령에서 전두환 아버지가 일본순사였다. 라는 소문이 계속해서 돌고 장영자 사태(사기금 5000억원으로 박정희가 미국 메이저 야구구단을 매입하였다. 실질소유주는 미국 CIA이다. 신장이식수술에 대한 보답이었다. 당시 플로리다 마린스 구단이었으나 20195월 클리브렌드 인디언스 구단이다.

클리브렌드 인디언스 구단 사무실 로비에 구단주 육영수의 사진이 걸려 있다.)로 시국이 들끓자 박상철(본명: 박정희, 남산 안기부 501)이 시국을 진정시키고 전두환 소문의 근원지를 척결할 목적으로 경남 의령군 궁류면 북한무장공비침투공작을 기획, 지시하였다.

 

궁류면 무장공비침투기획을 당시 박정희의 명령을 받은 안기부 기획실 박철언 과장과 기획실 제1계장 손학규( 손학규의 숙부는 육사 12기이다. 5.16 혁명동지회 회원인 숙부의 음덕으로 중앙정보부에 입사하였다. 1978~1982년말까지 활동, 현 바른미래당 대표)의 지시를 받은 문재인, 박원순 기획실 수습사무관이 기안하였다.

 

공작요체

 

안기부 박주선 2국 감찰 1계장, 문재인 기획실 수습사무관, 홍준표(본적: 경남 의령, 법무부에서 파견, 전 자유한국당 대표)2국 감찰 2주무관, 이석현 기획실 주무관, 보안사(기무사-현 국가안보지원사령부) 진수창 원사, 19823월 정보수집하기 위해 상부지시로 청와대 101경비대에서 경남 의령군 궁류면 지서로 전출한 우순경, 청와대 101경비대 중에서 착출한 3(3명 중 1인이 이철성(전 경찰청장, 부친 이상우가 경북 군위 출신이다)경사이다. 이철성은 이순자의 가까운 인척으로 순경합격 후 19821월 청와대 101경비대에 배치 받았다.)등이 인민군복장으로 무장하고 남침무장공비로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는 공작이었다.

 

당시 안기부 보직자

 

안기부장 유학성, 안기부 기획실 박철언 과장 , 기획실 제1계장 손학규(현 바른미래당 대표), 박주선(본적: 경남 사천, 당시 법무부에서 안기부 파견검사, 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2국 감찰 1계장, 홍준표(본적: 경남 의령, 법무부에서 파견, 전 자유한국당 대표)2국 감찰 2주무관, 안상수(내무부 파견, 전 창원시장)기획실 주무관

문재인(19823월 사법연수원 성적 수석과 차석인 문재인(현 대통령)과 박원순(현 서울시장)이 국가안전기획부(별칭: 남산 안기부)로 실무수습 명을 받았다. 19827월까지 실무수습을 받고 1982728일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문재인은 연수원 수료 후 안기부에 특채되어 활동하였다. 안기부 기획실 제2주무관 보직을 받았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산 279번지(신혼집)에서 남산으로 출근하였다.)과 박원순(현 서울시장)기획실 수습사무관

김무성(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1국 제1과 작전주임, 정윤회 제1국 제1과 요원, 보안사(기무사-현 국가안보지원사령부) 진수창 원사, 우순경과 청와대 101경비대 중에서 착출한 2, 101경비대 이철성(전 경찰청장)경사, 북한 인민군 박지원 소좌( 본명: 박두철, 평안북도 출신, 현재 양강도, 199456일 박근혜 안기부 제1국장, 문재인, 박지원 등은 김영삼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평양을 방문하였다. 복어 독을 주입한 환약을 선물로 김일성에게 주었다. 독이든 환약 2알을 복용한 김일성이 사망하였다. 노태우의 지시였다. 현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

 

 

 

1982426일 저녁 7시 선발조인 우순경과 101경비대 3명이 경남 의령군 궁류면과 가까운 경남 합천군 고령면 여관에 몸을 녹이려 들어갔다. 수사기록에 여관 주인의 4명에 대한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수사에 협조한 여관집 주인은 2년 뒤 암살당했다. 당시 여관 앞 정육점 사장이 이들을 스치며 목격하였다. 현재 생존해 있다.

 

1982426일 밤 9시에 우순경과 101경비대 3명은 여관에서 나와 인근 자동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주선, 진수창과 합류하였다. 이들은 인근에서 인민군복장으로 갈아입고 위장을 칠하고 북한군이 사용하는 AK소총으로 무장하였다. 이들은 밤 910분에에 경남 의령군 궁류면 압곡리로 이동하였다.

 

1982426일 밤 920분 안기부 후발조로 정윤회가 운전하는 차량으로 인민군 복장과 AK소총으로 무장한 당시 안기부 기획실 수습사무관 문재인과 박원순, 이석현(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시 안기부 기획실 신입파견 주무관)이 궁류면 압곡리에 도착하였다.

 

김무성이 운전하는 차량으로 당시 안기부 감찰실 파견주무관 홍준표와 안상수(내무부 파견, 기획실 주무관, 전 창원시장)가 압곡리에 도착하였다.

문재인과 이석현, 홍준표가 박주선 작전 조와 합류하였다. 안상수 일행은 뒷산 무리에 합류하였다.

 

안기부장 유학성이 남산에 있는 안기부 간부들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출장하는데 그대들이 사무실에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하였다. 작전조 이외 안기부 간부 15여명이 압곡리에 왔다.

당시 노무현(19826~19842월까지 안기부에서 활동, 노무현과 문재인의 인연이 안기부에서 시작되었다. 노무현의 경력 중 남산 안기부의 활동이력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노무현의 안기부 공직기간을 확인할 수 있다. 전 대통령)기획실 제3 계장은 압곡리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직3개월 징계 받았다.

 

의령군 궁류면 압곡리 뒷산에 박정희(이 날 저녁 730분경에 헬기에서 내렸다. 헬기를 본 다수의 마을주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안기부 간부 10여명, 2군단 특전공수여단장(701.702특전공수연대) 장세동 준장과 밀약으로 월남한 북한 인민군 박지원 소좌, 강명도 중좌(본명: 강명창, 평안남도 출생, 현재 경기대 북한대학원교수), 조명균 중좌(평안남도 출생, 현 통일부장관), 김길선 중좌(본명: 조수희, 평양외국어대학교 졸업, 조명균과 4촌간이다. 현재 평양여기자로 알려져 있다. 20195월 국정원 제5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생포된 무장공비로 방송에 나올 예정이었다.

군 수송버스 차량은 압곡리 마을 입구에 정차되어 있었다.

 

무장공비 소탕 군작전조로 안기부 제3국 제1 주무관 이병호(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장), 2군단 공수특전여단 702특전공수연대 1대대 2중대장 남재준 대위(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장), 1중대장 김관진 대위(박근혜 정부 당시 전 국방부장관), 보안사 대원(기무사-현 국가안보지원사령부) 10여명도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군에서 범죄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6명이 안면위장과 인민군 복장을 하고 포승줄로 묶여 있었다. 이들이 사살된 무장공비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다.

 

1982426일 밤 930분 작전이 시작하자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긴급전문이 내려왔다. 무장공비침투작전을 취소하라는 전문이었다. 미군이 개입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이미 총성이 울린 상태였다.

박근혜가 기치를 발휘하여 우순경 단독범행으로 처리하자고 하였다.

 

이 날 마을주민 100여명이 잠든 중에 AK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작전요원들에게 학살당했다.

문재인, 이석현, 김무성, 이철성 조는 평촌리(일제시대 원당리)와 압곡리에서 학살하였다.

이 날 생존한 마을주민 중에 손전등처럼 라이트를 켰다 껐다하는 승용차를 목격한 마을 주민들이 있을 것이다. 김무성이 운전하는 차량이었다.

박주선과 진수창, 홍준표, 101경비대 1명은 운계리에서 학살하였다. 사망자수가 많다는 이유로 노인은 사망자 수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날 영화배우 문소리의 아버지가 운계리 이장 집에서 마을 주민회의 도중 박주선의 흉탄에 사망하였다. 이장 집에서 총 8명이 사망하였다.

당시 문소리의 어머니가 안기부의 사주를 받고 우순경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증언하였다. 그 대가로 500만원을 받았다.

당시 문소리는 부산 이모 집에서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인민군 복장을 한 우순경과 101경비대 1명은 밤 940분경에 궁류면 읍내에서 4명을 총살하였다.

박정희와 그 무리는 1982426일 밤 950분 궁류면 면사무소에서 권총으로 우순경을 사살하고 시신을 순경복으로 갈아입히고 얼굴의 위장을 지웠다.

궁류면 읍내에서 여러 정황을 우순경 단독범행으로 정리하였다.

궁류면 예비군 중대실에서 밤참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있던 방위병 2명이 목격하였으나 한명은 총살당하고 뒷문으로 도망간 방위병이 탈영병으로 현재 생존해 있다.

 

의령학살사건에 대한 정부1급 기밀문서에는 북한무장공비들이 마을주민들을 학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0442일 밤 10시 민주당 간사실에서 진수창이 당시 민주당 간사인 정세균, 추미애, 박영선(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찾아가 사건 전 말을 실토하였으나 정세균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 해 가을에 진수창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

정세균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전남 순천 고등검사장이었다. 정세균 조부의 사형언도로 독립군 10여명과 독립군 연락책으로 오인된 민간인 30여명이 사형당했다.

1941715일 오전 10시 집에서 독립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 사건이 당시 경성일보에 실렸다.

 

추미애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전 어버이연합 사무처장 추선희의 친 누이이다.

국회의원 추미애의 아버지는 1961년 중앙정보부 신설 때부터 퇴직하는 1985년까지 중앙정보부간부(안기부)였다.

케네디 암살 후 추상길에서 추상우로 개명하였다. 케네디 암살의 공으로 고속 승진하여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35년 근속표창장을 받았다.

1975년부터 세탁소운영은 상부의 지령으로 신분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20114월 박근혜의 밀지를 받은 이완영(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작전에 투입된 101경비대 2(2011년 총경과 경위)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이명박 대통령

이완영에게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이완영이 기무사 작전과장(00)에게 암살을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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